이전 사이트 글 재업) 한국 번역회사 생존기 8 - 기계가 인간 번역가의 일을 뺏어갈까요?

안녕하십니까 대원님들, 한국 번역 회사에서 야근으로 구르며 체력이 너덜너덜해진 프로 야근러입니다.

"기계 번역이 번역가라는 직업을 없애지 않을까요?"는 영미도 대장님의 이글루스와 네이버 블로그, 애슼픔에 꾸준히 올라오는 단골 질문이지요. 심각하게 꾸준히요 ^q^

대장님이 아니라고 대답해도 조금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이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안 그래도 다크로드로 진화한 다롱이가 자꾸 물어서 곹통스러울 대장님을 같은 질문으로 개롭히지 맙시다.

컴맹을 벗어나려 노오력하고 번역계 생태에 금방 적응하는 타입이고 관절이 무사하다면(!) 평생도 일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번역가라는 직업 자체가 미래에 없어질거란 소리를 자꾸 들으니 불안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기계가 단순 사무직과 은행원부터 후에는 예술 영역까지도 인간을 대체해버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뉴스가 나오는 데다 통역/번역기가 제법 덜 빻기도 하고(그래도 빻았지만) 심지어 커피도 로봇이 만들어 줍니다. 제2 롯데월드의 로봇 카페에서 라떼를 주문하고 로봇이 음료 만드는 것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미래에는 바리스타란 직업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근미래적인 근심이 생기지요.

근데 잠깐 번역 회사를 다녀보니 그런 걱정하기엔 조금 이르지 싶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들은 바로, 기계 번역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사람의 감정에 어필하는 마케팅 문구는 기계로 대체 불가능
2. 애초에 기계 번역의 용도가 번역가를 대체하기 위함이 아님(CAT툴같은 보조용)
3. 기계 번역기 개발자가 게으름(!)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작년쯤 실미도를 휩쓸고 간 아마존 종커스 MTPE 잡 기억하시나요? 기계 번역한 것을 사람이 일일이 뜯어 고치는 일이었지요. 사람보다도 일을 안하는 기계가 빻아놓은 번역을 고친다고 몇몇 분이 인형 눈알 붙이기를 하시고, 몇몇 분은 DOMANG 각을 예리하게 세우시고,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개발하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지금의 기계 번역은 대충 그 수준입니다.

번역료를 줄여보려고(기계 번역은 공짜니까) 기계로 돌렸는데, 결과물은 무척 빻았지요. 그럴거면 처음부터 번역가 쓰지. 기계 번역이 공짜라지만 어차피 기계 번역 돌리는 사람한테도 월급은 줘야 할텐데 🙁
미래에는 더 나은 수준이 되겠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은 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는 번역가보다는 검수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만요.

기계가 아직 사람만큼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다른 예시로는 기계 검수가 있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자체 개발한 검수용 툴을 씁니다. 오타, 띄어쓰기 중복, 중복 단어 등을 잡아주는데요. 아직 기계적으로 형태만 분석한다 뿐이지, 의미를 파악해서 오류를 잡는 것은 아니라서 휙 돌리면 오류가 아닌 것까지 잡아 보고서를 작성해 오지요.


사람이 직접 일일이 보는 것보다 시간도 절감되고 오류를 놓칠 일은 적지만, 맥락을 파악해 오류를 잡아내는 것은 아니라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들이미는 보고서에 실제 오류가 하나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게임 스크립트에 미친 캐릭터 여러 명이 등장하는 바람에 무척 검수가 힘들었습니다.

캐릭터들이 "하하하! 이히히히히! 크헤헤헤헤! 으하하하하!" 하면서 미친듯이 웃어제끼는데 이 '하하하'를 웃음 소리로 인지하지 못하고 죄다 중복 단어로 인식해서 잡아낸 것이지요.

'Ha ha ha ha' 'Ah ah ah ah' 등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그놈의 '으하하하하'를 몇개국어 보고서로 받아 봤는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계 번역을 돌려서 고갱님의 마음을 붙잡는 멘트를 만든다? 대장님이 코랄색 빨간펜으로 한땀 한땀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번역을 내가 하겠다고 해야 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2.
기계 번역은 번역 회사에서 돌리고, 그 이유는 번역료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표면상으로는 번역가의 일을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시간을 줄이고...라는데 그냥 번역가의 보조 역할이예요.

오역이 발생하더라도 일단은 기계니까 잉간 번역가가 자주 실수하는 일관성 이슈, 번역 누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지요.

그리고 주로 기계 번역은 마케팅, 게임 등 상업 번역과 의료 등 전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은 빼고 돌리는 데다, 기계 번역을 돌릴 수 있는 매치율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계가 완전히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무섭게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번역가의 입지를 좁힐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존처럼 용어가 자주 반복되는 상품 설명 등은 기계가 번역가의 자리를 일부 빼앗아 갈 수는 있겠군요. TM 적용을 한 다음 매치율이 비교적 낮은 것은 기계 번역으로 빻은 다음, 모든 결과물을 사람이 고치는 식으로요.
하지만, 미래에도 기계 번역을 돌렸을 때 효율이 지금처럼 떨어진다면 그냥 번역가만 쓰겠지요.


3.
이건 교육 때 회사에서 설명해주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일하면서 알게된 이유입니다.
"기계 번역 개발자가 게을러서 인간 버녁가 대체 불가능"

무슨 말이냐면 영어, 유럽어 등 수요가 많은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ex. 수요가 적은 편인 한국어) 발생하는 자잘한 이슈는 개발자가 귀찮아 하면서 고치지 않아요. 그냥 쓰래요. 하 쒸,,
이미 주요 언어에서 발생하는 에러로도 힘에 부치는지 이슈가 발생한지 몇년 된 건도 방치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현지 번역가들도 에러 보고를 그냥 포기한 상태고 사람이 기계에 맞춰서 더 일해요. orz

그리고 개발자가 모든 언어 특성을 다 이해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노이즈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엉뚱한 표현을 가져와서 붙이고 번역하는 이슈는 고질적으로 있을 것이예요.

각국 언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열정적인 개발자가 대거 뛰어든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제가 시간을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기계 번역이 인간 버녁가를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버녁 회사에서 교육 받고 일하며 익힌 바로는 그럴 확률이 희박하고, 만일 그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그러려면 아직 많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설명이었지만 안심하고 인형 눈알 붙이기 로동을 할 근거가 되었길 바라며, 번역가 없어진다 소리 듣느라고 걱정하느라 흰머리 뽑고 있을 어딘가의 대원님을 위해 이 글을 바칩니다.

결론: "번역가라는 직업이 없어질지도 몰라!"라며 걱정하고 있을 시간에 오늘도 이력서를 열심히 돌리세요!!! 랜선 채찍 찰싹찰싹!

일하기 실코 둔눠있고 싶은 대원은 다시 밀린 업무 메일 확인하러 갑니다 이만 총총...

beyond 번역가 beyond · 2019-04-10 10:20 · 조회 1447
전체 2

  • 2019-04-10 13:27

    ㅎㅎ 몇 번 글을 읽어봐도 ㅎㅎ 참 재미있게 글 쓰시는 것 같아요 ㅎㅎ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ㅎㅎㅎ다음 편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


    • 2019-04-11 11:45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에 매우 치이고 있지만 힘내서 다음 글을 또 찌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