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이트 글 재업) 한국 번역회사 생존기 4 - 야근에 날개를 달아주는 버녁가

안녕하십니까. 번역회사 입사 후 프로야근러가 된 대원입니다. 오늘은 생존 신고를 하러 왔어요.(=징징거리러 왔습니다.)
정말 농담이나 뻥이 아니고 매일 추가 근무를 하고 있어 맞은 지 얼마 안 된 비타민 주사를 또 맞고 싶읍니다. 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려와서 매일 야근^q^... 방학 기간도 끝났는데 게임 업데이트는 왜 이렇게 많은지ㅋㅋㅋ


회사에서 여러가지 메일이 오는데, 그 중에 역시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규 번역가 안내 메일이예요. 주로 오는 메일 내용은 이래요.
"(특정 언어쌍) 번역가가 들어왔고, 테스트를 몇 점으로 통과했다 또는 테스트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진짜 부럽읍니다) 여기 샘플을 봐라."


하지만 항상 저렇게 훌륭한 번역가만 있다면 저같은 찌끄레기는 번역 시장에 발도 붙일 수 없겠지요. 저는 저런 메일 사이에 섞여서 들어온 한 통의 메일을 받고 조금 충격을 받았읍니다. 어떤 내용이냐면 어떤 번역가가 테스트 통과하고 처음 받은 일을 무려 구글 번역기에 돌려서 납품을 한 것이예요! 구글 번역기라니 그는 DOMANG하고 싶은 심경을 이렇게 돌려 표현한 것일까요?
번역기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메일에 첨부된 번역물을 열어보니 예를 들어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말을 영어로 옮겨야 하는데 'not giving a snow way' 이런 식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이예요. 충격과 공포의 구글 번역기 작업물,,ㄷㄷ 혹시나 너무 바쁘면 구글 번역기를 돌리지 말고 그냥 일이 너무 바쁘다고 합시다...


저는 일하기 시작한 첫 달에는 남 일처럼 아이구 구글 번역기라니 I9 정도만 하고 있었읍니다만 버녁가의 빻음과 일이 귀찮았는지 작업물에 거의 손을 안 댄 리뷰어의 콜라보가 어떤 지옥도를 선사하는지 생생하게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왜 샘플 테스트를 그렇게 혹독하게 보는지 왜 저렇게 전체 메일 뿌려가며 공개처형을 하는지 좀 알 것 같았어요ㅋㅋㅋ...(죽은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자리입니다.)


문제의 빻은 버녁가 분은 다른 건 다 멀쩡하셨는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죠. 그... 여러분, 용어집과 TM을 꼭 이용합시다.
자존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들려 보내준 용어집과 TM을 전부 무시하시고 자기 스타일대로 작업해 온 분 때문에 저는 어제도 눈물의 야근을 하였구요,, 설마 이분 TM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틀려 온 용어를 죄다 뜯어 고치고 있었습니다. 따흐흑. 일정이 촉박하지만 않았다면 다시 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넘나 빻았어요.


그리고 리뷰어 분도 분명 똑같은 준비물을 받았을텐데 문법과 오타 정도만...고치셨더라고요. 저한테 왜 그러새오...^q^...살려달라


꼮...꼮...용어집과 TM, 스타일 가이드를 참고해서 번역/리뷰해줍시다. 왜냐믄 안 그러믄 제가..제가 너무 개로워여


그렇게 납품한 작업물은 장인 정신을 담당하고 있는 고객님의 '이 느낌이 아니야!'라는 애매모호하고 아리송한(좀더 샤~하고 모던하고 클래식하게라는 디자인 주문을 들은 기분) 피드백에 따라 다시 고쳐서 옵니다. 그래서 다시라는 말이 너무 무섭읍니다. 영미도 대장님이 이렇게 '느낌' 어쩌고 '더 자연스럽게' 어쩌고 하면서 다시 해오라고 하는 고객 있으면 DOMANG하라고 했는데 제가 호구면 그냥 DOMANG하겠는데 내 월급 주는 회사가 호구애오.


결론:
1. 여러분 번역은 꼮 용어집, TM, 스타일 가이드대로 해주새오
2. 프리랜서가 짱이애오
3. 겆이같은 고갱님의 비위는 돈 많이 줄때나 맞춰주새오. 호구잡혀서 고갱님 잘못 만나면 고생만 하고 돈은 요만큼 번다 에비!
beyond 번역가 beyond · 2019-04-10 10:02 · 조회 1005
전체 4

  • 2019-06-04 15:38

    안녕하세요. 생존기 정주행 하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도 유치원 시절 가입자건만 이제사 시작하는 입장에서, 글마다 생생하게 도움이 되는 이 느낌 소중하네요.
    그나저나... ㅋㅋㅋㅋ 제가 아직 본격적인 커리어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경험 차 영상 번역을 한번 해봤는데요. 어찌저찌 제가 포함된 번역자 그룹을 제가 반쯤 관리하게 된 거 있죠. 저도 그들도 다 별 경험은 없는 사람들이었고요. 그런데 결과가...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개중에선 영어를 가르친다는 사람도, 살다왔다는 사람도, 영어 전공자도 문학 전공자도 있었습니다만, 다들 가이드는 팽개치고 자유로운 번역을 해주었더군요. 졸지에 번역자 타이틀을 달자마자 정신없이 감수(라고 적고 갈아엎기라고 부르는 일)까지 쳐내며 눈물의 몇주를 보냈습니다... 이 경우야 다들 경험이 없었으니 그렇다쳐도, 당당히 프로로서 일 받는 사람들도 그런 짓을 하는군요 ㅋㅋ 위안 아닌 위안이 됐읍니다. 지난 실미도 사이트의 글을 거의 못 봤는데, 이렇게 옮겨와주셔서 감사해요!


  • 2019-12-16 12:53

    감사합니다^^


  • 2019-04-10 20:57

    또 봐도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ㅋㅋ 다시 정주행 중입니다


    • 2019-04-11 11:46

      ㅎㅎ재밌게 읽으셨다니 뿌듯합니다. 비타민 주사나 맞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