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인생에 플랜B가 생긴다는 것

안녕하세요?

다들 안온한 환경에서 원하는 소득 얻고 계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로그인까지 해서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네요.

 

어쩌다 이 업계에 발을 들여, 어느새 4년 차 번역가의 타이틀을 달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니, 그 시작은 저 역시 임윤님의 블로그였네요 ㅎㅎ

당시 대단한 여드름쟁이였던 전 이놈의 피부를 해결하고자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 바로 임윤님의 블로그였습니다. 다만 그곳에서 전 피부에 대한 지식만 쌓고 끝난 것이 아니었고.. 이 분의 말솜씨에 매료되어 한 5년쯤 연재를 진행 중인 웹소설의 정주행을 달리듯 임윤님의 블로그를 정주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번역’이라는 세계가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만 해도, 어디 유학을 다녀와야 하거나 혹은 통번역을 전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뭐, 여전히 제 길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며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극의 시작이었죠)

전 제 전공과 연관 있는 업계에서 일하는 것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었어요..(왜 그랬을까요..) 그냥.. 젊으니까.. 당시엔 똥인지 된장인지 눈에 뻔히 보여도 꼭 찍어 먹어봐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몸담았던 업계는 좋게 말하면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곳이었구요, 현실적으로 말하면 초봉이 몹시 짠데 연봉 인상률마저 공산주의 수준으로 빤해서 눈물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감동의 눈물은 아니었을 거예요. 제가 1년 동안 대단한 성과를 보인다고 해서 연봉이 파격적으로 오르는 일은 (절대) 없지만, 다음 해에 제자리걸음인 연봉에 일만 파격적으로 많아지는 그런 곳이었죠. 능력을 보이는 자, 더 빨리 고생길로 접어드는 곳, 아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좋아했어요(철이 없었죠).

 

근데 문제는, 제가 일을 사랑한 만큼, 전, 받은 월급으로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사는 것을 몹시도 좋아하는 인간이었던 것에 있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입고 신은 것도 손민수하고 싶고, 각각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가방을 구비하고 싶은데, 아무리 기본적인 생활비만 쓰면서 아끼고 또 아껴도 답이 없는 거예요.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쓰는데, 워낙 받는 돈이 적으니까 다 끌어모아서 써도 안되는 거 있죠. 그게 전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그렇다고 '내가 다시 구직 활동을 해서 연봉을 높일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이미 업계에는 발을 들여버렸고, 당장 월급이 짜다고 보장할 수 없는 미래에 몸을 던질 수는 없었던 거예요.

 

돈을 더 벌고 싶어!

라는 욕망이 정점을 찍던 그때, 실미도에서 대원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실미도가 문을 열자마자부터 합류하진 못했어요. 자신이 없었거든요. 돈을 더 벌고 싶긴 하지만, 번역은 너무나도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전 해당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임윤님이 하신 ‘식당에서 서빙하고, 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을 팔아본 경험이 바로 번역의 자산이다’라는 말에, ‘저거.. 다.. 나잖아..!(일식집에서 서빙함, 화장품 판매 알바함, 쇼핑 많이 함) 에라 모르겠다. 돈도 쓸 만큼 써봤으니 돈 쓰면서 들었던 멘트 뭐 하나라도 써먹겠지!’하며 어느 날 갑자기 용기를 내어 합류하게 됐습니다.(그리고 후일 실제로 들었던 멘트를 써먹으며 돈을 벌고 있읍니다..)

 

솔직히 전, 그다지 성실한 타입이 되질 못해서요. 가입하고서도 회사 다니면서 피곤하다고 핑계 대며, 눈팅만 하다가, 당시 실미도 시절 임윤님이 ‘이 글을 보고 계신 당신 어서 이력서를 제출하시오’라는 다정한 경고를 가끔 날리실 때, 그제서야 아차차~ 하면서 이력서 찔끔 써서 내고, 이력서 완성하고서도 별달리 액션을 취하지 않다가 ‘하루에 10개씩 이력서를 돌리시오~’라는 채찍질에 아차차~하며 또 이력서 돌리고.. 그렇게 어영부영 첫 일 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렇게 거지 같은 성실함을 가진 저같은 인간도, ‘메일에 답장을 하고’, ‘파일을 열 수 있으며’, ‘고객이 원하는 형태의 파일로 납품을 하고’, ‘마감을 잘 지키면’ 1~2년이 지나는 시점부터는 슬슬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1~2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분들이 노력하시는 정도라면 더 짧을 수밖에 없겠죠.

 

한산번에 머물며 도움받은 것들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보면,

 
  1. 시장에 진출 가능한 이력서를 쓸 수 있었다.
여러분, 미술 수행평가로 ‘도화지를 빨간색으로 채워 오세요. 재료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빨간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실컷 칠해서 제출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력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전시에서는 내가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사람인지를 보고자 하는데,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우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내용을 써서 내거나, 수능에서 주야장천 강조해온 단복수 체크와 시제 일치마저 하지 못한 이력서를 내게 되면, BTS로 높아진 국격이 조금 깎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헌데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자신의 이력서에 존재하는 모든 결점을 완벽히 잡아내고 수정하실 수 있으십니까? 일단 전 못합니다(그럴만한 영어 실력이 못 됨). 하지만 한산번은 그것을 해냅니다.

 
  1. 나만의 오답 노트가 생겼다.
실전에 투입되시기 전에 샘플 테스트도 해보시고, 따로 연습도 해보시지 않습니까? 헌데 이게 혼자서 번역을 하다 보면 ‘아, 여기서 내가 써놓은 똥보다는 더 나은 말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게 뭘까!’ 싶은 문장들이 꼭 생깁니다. 하지만 에이전시는 우리에게 온보드 가능 여부만을 알려주지, 좀 더 ‘나은 번역’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그 문장만 몇 시간씩 들여다본다고 해결이 되느냐? 그건 또 아닐 겁니다. 이를테면, 수2의 기본 미적분 개념은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이제 이차방정식을 겨우 뗀 중 2짜리가 백날을 들여다보고 있는다고 그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거죠. 하지만 우리에겐 뭐가 있다? 한산번이 있습니다. 비록 저의 똥을 뜯어고치시는 분들은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제겐) 다행이지 않습니까? ‘분명 더 나은 무언가’를 시원하게 제시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샘플테스트를 본 에이전시는 합격하지 못 할 수 있죠. 하지만 세상에 에이전시가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빨간 줄이 쫙쫙 그어진 리뷰 내용을 보고 또 보며 외우면 됩니다. 나만의 오답 노트를 ‘남의 손으로’ 뼈대를 잡아 만들고 열심히 외우면 어느새 그 문장/표현은 내 것이 됩니다.

 
  1. 나의 번역이 어느 정도 사이즈의 똥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전 제가 워낙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당연히 번역을 하게 되어도 여행 쪽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여행 쪽 내용의 리뷰를 받으면 다른 분야에 비해 ‘완전히 잘못 번역된’ 내용이 많았고, 실제로 테스트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분명 번역을 할 땐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헌데 너무 다행이지 않나요? 만약 제가 이렇게 여행 분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임을 미리 깨닫지 못했더라면 무턱대고 여행 관련 일을 왕창 받고, 평판이나 왕창 깎이면서 소중한 거래처를 잃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무언가가 자신에게 맞거나 맞지 않음을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에 맡겨서 알게 되는 것은 음식 취향이나 퍼스널 컬러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오고 가는 이 시장에서,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사이즈의 똥을 싸고 돈을 받아가 버리면 그 에이전시와는 다시 만나기 힘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에 진입하시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건드려 보시고, 판단 받으십시오. 바쁘다바빠 현대 사회에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나의 똥을 점검해 주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1. 시간을 절약했다.
내용상으로는 3번과 이어지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다채롭게 똥을 싸서 리뷰를 받다 보면, ‘이 정도면 괜찮네요’의 평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최근의 리뷰 경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 제 분야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분명 저 혼자 연습하고, 판단하고, 시장의 평가를 다이렉트로 받아야 했다면 이렇게 (제 기준) 짧은 시간 안에 자리 잡기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자리를 잡기도 전에 포기하고 나가서 여전히 점심값을 아낄 궁리를 하며 회사나 다니고 있었겠죠.

궁금한 것을 질문을 할 수 있고, 나의 결과물을 평가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작게는 문제 상황을 좀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좀 더 크게는, 제가 이 시장에서 자리 잡고 어엿한 일꾼으로 인정받으며 돈을 벌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투자해 시간을 사십시오.

 
  1. 인생의 플랜 B가 생겼다.
학생일 때는 몰랐는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여차하면 딴거 하지 뭐’라는 말을 할 수 있냐와 없냐에 따라 삶의 질(주로 멘탈)이 꽤 달라지더라고요. 물론 제가 재벌집 딸래미였으면 ‘여차하면 여기 때려치고, 아빠 회사 들어가지 뭐’ 또는 ‘건물 받아서 관리나 하지 뭐’라는 말을 걱정없이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저희 부모님이 노력을 안하셔서 저런 멘트를 칠 기회는 요원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산번 덕에 자리를 잡게 되며 제 나름의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다는 것은 정말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전 이 일을 가방 하나 더 사고, 옷 한 벌 더 사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건 이렇게 ‘더 살 수 있는 돈’이 생긴다는 것 혹은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게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먹고 싶어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메뉴가 따로 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꾹 참고 대충 저렴한 메뉴에서 타협했고, 정말 필요한 것을 사는 데도 최대한 싼 걸 찾으려 시간 낭비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 선까지는 가격표를 보지 않고 구매를 결정해도 부담되지 않게 되었고, 좀 더 나아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시간과 돈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왔을 때, 전보다는 덜 고민하고 최종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당장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플랜 B가 이젠 제게 있으니까요.

 

 

정말 애석하게도, 전 회사 생활을 하는 것 자체를 꽤 좋아하는 편이어서, 출퇴근이 불가능해지기 전까진 회사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전업으로 프리랜서를 하진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시는 다른 분들에 비교한다면 덜 적합한 내용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부업으로 내 삶의 질을 살짝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갖고 계신 분들께 저처럼 회사 생활과 병행하면서도 충분히 원하는 소득 올리며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이벤트 제목 그대로, 한산번을 만나고서 별 소득도 없이 아등바등하기만 했던 제 인생이, 충분히 여유롭게 누리며 윤택해질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살짝 업그레이드 하려 했던 것의 의도치 않게 왕창.. 업그레이드 되기도 했구요 ㅎㅎ

조바심내지 않고 하나씩 한산번의 미션(이력서 작성-이력서 돌리기-샘플 테스트 통과하기-트라도스 정복하기 등)들을 클리어하다 보면 어느새 회사에서 퇴근하고도 울며 마감치고 잠들며 다음날 점심으로 특초밥을 꼭 먹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실 수 있습니다...ㅎㅅㅎ(쓰고보니 여전히 아등바등 사는 것 같아요..어쩌지..)

 

쓰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매일 2만 원짜리 스테이크 덮밥 드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스파/에스테틱 가서 관리받으며, 좋아하시는 운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수업료도 팍팍 쓰시는 행복한 삶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열심히 버는 하루 되세요!
번역가 sundown sundown · 2022-04-12 03:19 · 조회 956
전체 7

  • 2022-04-12 03:29

    아앗 ㅠㅠ 포럼 글은 수정이나 삭제가 되질 않는군요ㅠㅠ!! 분명 본문 작성할 땐 넘버링한게 문제없었는데 업로드 하고 나니 죄다 1로 기재돼있네요ㅠㅠ 부끄러워라!


  • 2022-04-12 09:47

    직장 다니면서 도전하고 있는 제게 많은 영감을 주셨습니다.


    • 2022-04-13 17:06

      안녕하세요!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 초반에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되는 일감들이 생기긴 해도, 직장에서 얻는 고정 수입이 초반의 수입이 불안정한 시기를 잘 버틸 수 있게 해주더라고요! 민트색님도 앞으로의 시간들 원하시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


  • 2022-04-12 15:26

    구구절절 공감가는 글입니다. 로동자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시간을 들여 돈을 버는' 게 일반적이겠습니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 못지않게 '돈을 들여 시간자원(+신체적 정신적 여유)을 사는' 것도 꼭 필요하더라고요. 아울러 저의 똥을 뜯어고치느라 곳통받으실 분들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을 해 봅니다(...)


    • 2022-04-13 17:12

      맞습니다. 하다못해 카페나 빵집을 창업하려해도 그 기술을 배우려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함께 묵념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봅니다..ㅎㅅㅎ


  • 2022-04-14 00:50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서 영어공부 하고 있지만, 좌절하고 있는 순간에 또 희망을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 2022-04-17 22:29

    저도 실미도 가입한지 오래 됐는데, 아직 시작도 안한 뉴비로서 힘이 되는 글입니다!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