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쓴 소리 해주는 곳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안녕하세요, 대원님들.
근황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벤트에 참여하며 다시 제 근황을 알려드리게 되어 또 민망하네요.
나 살아 있다!!! 라고 포럼에 계속 소리치는 느낌..ㅎㅎ
글을 쓰기에 앞서.. 저의 실력을 냉정하게 말하자면
연락 잘 됩니다(잘 때가 아니면 진짜 무조건 연락됩니다. 원래도 핸드폰 많이 보고 살았음).
파일 잘 엽니다(진짜 잘 엽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구글링은 좀 함).
오역과 누락...은 없었으면 좋겠네요...ㅎㅎ... 없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해서 이벤트 참여해도 되나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참가 자격이 오역과 누락 없는 회원님이 아닌 이력서 첨삭이 완료된 회원님이더라고요.
부족하지만 어쨌든 한산번으로 제 인생이 바뀐 건 사실이어서 이벤트에 참여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당연히, 실력이 부족해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취지는 아니라는 점 알아주셔요.

 

저는 작년 1월에 가입했어요.
신상을 자세하게 공개하긴 어렵지만, 그 전에 꽤 긴 기간 동안 공무원 비슷한 거.. 였다가
여러가지 성 관련 사건과 제 가치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무조건 이 직장을 나가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었어요.
이전에 이글루스 사이트에 임윤 님 블로그가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부터 네이버 블로그까지 따라다니며 임윤 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직업도 있구나, 돈도 꽤 잘 버나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번역가란 직업에 도전해보고는 싶었는데 영어 실력이 영 안 돼서 일찍이 포기했었어요.
그러다 번역과 상관없는 전공으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이전 직장을 진짜로 그만두게 되었는데,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풀타임 직업을 구하기가 어렵고 번역가는 프리랜서로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알바비라도 벌 수 있으면 벌자는 마음으로 한국산업번역교육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백수였던 제 기준으로 등록비가 적지는 않았지만 퇴직금이 있어서 질러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등록을 마치고 첫 샘플 번역을 맡겼는데,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결과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애초에 번역이라는 걸 해 본 적도 없고, 그냥 토익 점수 잘 나오고 수능 칠 때 영어 1등급이었으니
나는 영어 잘 하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첨삭을 받으면서 아, 산업 번역에서는 단어 하나, 관사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거구나.
어떻게 번역할 지 모르겠다고 해서 은근슬쩍 단어를 빼놓고 가면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걸 배웠어요.
임윤 님 최근 글처럼 저는 '이탈리안 그레이 하운드'라는 종을 잘 모르겠다고 해서 그냥 '개'로 뭉뚱그려 번역했던 거죠.
안 그러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이야기로 들을 때와는 달리 직접 번역을 해 보니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이런 교훈을 얻었다고 해서 바로 오역 없이 번역을 잘 하게 되었느냐?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에이전시에 이력서를 뿌리면서 한 게임 회사의 테스트를 보게 됐어요.
밤을 새가면서 진짜 열심히 했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된다, 이력서 그만 돌리고 공부해야 한다는 한산번의 평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평가를 들었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된다'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콕 박히던지..ㅎㅎ
그저 팩트로만 이루어진 말이었는데, 원래 팩트로 맞을 때 진짜 아픈 거 아시죠?ㅋㅋㅋ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 덕분에 이후에 실제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도
이건 진짜 중요한 거다, 단 하나의 단어라 해도 뭉개서 번역하면 안 되는 거다, 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마음이 아팠지만 저는 그 말을 들은 게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산번은 번역가가 되는 길을 도와주는 곳이지, 예쁜 말로 응원해 주려고 등록비를 받는 곳은 아니니까요.

 

한산번의 도움으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여러 분야를 포기했고 정신도 약간 차린 저는
작년 4월부터 작은 일을 한 두 건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번역 일보다는 기계 번역 품질 확인, MTPE, QA 같은 일이 주로 들어왔던 것 같아요.
번역 일이 아니어도 무조건 진짜 열심히 했어요.
영작해야 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그래머리를 썼고요.
그래머리 돌려야 번역가의 신뢰도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한산번을 통해 배운 엄청난 꿀팁이에요.
지금도 그래머리를 크롬 추가 기능으로 넣어 놓고, 지메일 쓸 때 자동으로 쓰고 있어요.

용돈 벌이 수준을 넘기 시작한 건 작년 7월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는 이전에 다녔던 직장의 월급만큼 벌었어요.
월급만큼 벌게 되니 원래의 목적이었던 알바가 아니라, 이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나오긴 했는데 프리랜서 번역가만큼 좋은 환경의 일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산업 번역이랑 영 상관이 없는 전공이라서 지금까지도 써 먹을 일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대학원 등록할 돈으로 한산번 빨리 등록할걸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은 등록한지 딱 1년 3개월 지났고, 일감이 들어온지는 딱 1년 되었습니다.
지금 엄청나게 성공한 번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 삶은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월급 받던 시절보다 많이 벌게 되었어요.
건강을 좀 갈아야 하긴 하지만 많이 벌 때는 이전 직장의 두 배 쯤 벌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성희롱과 불합리함이 공기 수준이지만 절대로 잘리지는 않는 이전 직장을 그만둘 때 남편과 부모님이 티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도 상당히 걱정했는데
지속적으로 수입이 나니까 이제는 '이게 되네?'라면서 놀라워해요.
번역가로서의 일상은 무슨 브이로그 찍는 유튜버같아요.
일어나서 제 취향대로 정리한 책상에서 일하다가, 커피 마시고, 강아지 산책 나가서 한적한 강변과 공원을 걷고 소박하게 밥 해 먹고,
전화 영어도 수강하고, 저녁에는 운동 가는 삶이죠.
일어나는 시간은 직장인 시절과 비슷한데 이상하게 저절로 눈이 떠지고 출근 생각에 절망적이지 않아요.
유튜브에서, 직장 다니면서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라면 죽느니 그 직장을 그만두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만 두고 싶다고 해도 의무 기간이 있어서 그만 둘 수 없다며 혼잣말하면서 베개에 가로 눈물을 적셨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에는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났을 때가 아니라면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명확히 든 적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일하다가도 이 삶이 행복하고, 일을 준 PM에게 감사하고,
편안한 내 집에서 강아지 자는 것 보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에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요.
중간 중간 강아지와 산책 나가서 남들은 잘 느끼기 어려울 평일 낮 시간을 한가로이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감사하고요.
물론 그때 한가로이 즐기려면 눈 뜨자마자 일해야 하고 산책하면서도 스카이프 알림음에 귀 기울여야 하긴 하지만...
그 정도를 못하겠어요? ㅎㅎ

 

그렇다고 해서 매일이 평안하고,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아녜요.
제 실력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항상 들어요. 며칠만 일이 안 들어와도 '드디어 날 잘라버린건가' 같은 생각이 들어요 ㅎㅎ..
프리랜서로 일해보니 이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 전 직장에서는 잘리지 않으니까, 내가 일을 너무 못 하더라도 일단은 생계에 문제가 없었고 (ㅎㅎ;;) 동료들도 그만두지 않으면 평생 볼 사이니까
누군가가 일을 너무 못 할 때는 '너는 형편없다'는 사실을 동료들이 알려주면서 개선할 방법도 알려주고 그랬어요.
일단 내가 내 몫을 해야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입지 않으니까요.
물론 그런 방식이 따스하고 합리적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라도 도와주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프리랜서는 다릅니다. 자기 몫을 못하면, 그냥 일을 주지 않으면 돼요.
에이전시에서 일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내 몫을 하도록 도와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점을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 볼 수 없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면서도 도태되는지 인지조차 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프리랜서로서 이런 점이 오히려 고용 안정성 같은 면보다 무섭고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저에겐 한산번이 있어요.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판단해 줄 수 있고, 못하고 있다면 어떤 점을 못하고 있는지 알려주며, 심지어 개선 방법까지 알려주니까요.

 

여러분, 한산번을 열심히 이용합시다.
특히나 저처럼 일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 분이 계시다면, 못한다는 얘기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못한다는 얘기조차 듣지 못하는 게 진짜로 어려운 상황인 거죠.
저는 아직 제 실력을 자신하기 어려우며, 지속 가능성을 계속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감사할수록, 한산번을 통해 저의 부족한 점을 최대한 많이 파악해둬야겠지요.
꿈에 그리던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신 것이 지금까지도 감사했지만, 앞으로도 한참은 감사할 예정입니다.
글 읽는 여러분도 주저 마시고 미뤄 둔 샘플 테스트 리뷰, 이력서 업데이트를 함께 실천해보아요! 쓴소리 들으려고 돈 주고 가입하셨잖아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쓴 소리 달게 받고 긴 세월 근황 글을 올릴 수 있는, 오역 누락 없는 번역가가 되고 싶습니다.
행복하세요.

 
번역가 동그라미 동그라미 · 2022-04-05 08:49 · 조회 956
전체 2

  • 2022-04-07 22:10

    동그라미 님은 많은 발전을 보여주신 분이어서 특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사실 관사단복수일치대소문자 오류는 한국에서 훌륭한 객관식 시험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입니다.
    다만, '점수를 매겨야 하는 한국 교육에서 중점을 두어 가르칠 수는 없으나 상업적으로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빨리 깨닫고 개선하셨습니다.
    연습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뿐이지요. 공부만 하겠다고 마음먹으시면 저희가 항상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 2022-04-12 07:36

    제게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었어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